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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석
1911. 5. 21∼1991. 10.
정비석(鄭飛石, 1911. 5. 21∼1991. 10.)의 본명은 서죽(瑞竹)이다. '비석’은 스승이었던 김동인이 지어준 이름이다. 1911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1932년 일본에 있는 니혼대학 문과를 중퇴했다. 귀국 후에는 <매일신보 >에서 기자로 근무했다.

1935년 시 <도회인에게>, <어린 것을 잃고>와 소설 <여자>, <소나무와 단풍나무>를 발표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졸곡제(卒哭祭)>가 입선 되었고, 193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성황당1城隆堂)>이 당선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문인 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를 지냈다. 해방 후 에는 <중앙신문> 문화부장을 지냈고,이후 전업 작가로 소설 창작에 매진해 1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다.

1954년(1. 1 ~ 8. 6) <서울신문>에 연재한 장편《자유부인》은 당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아 정비석의 대표작이 되었다. 《자유부인》은 전쟁 이후 달라진 사회상을 현실적으로 묘사,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지식인 계층의 대표격인 교수와 그 부인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타락상을 드러내고 있어 사회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황산덕은 교수를 모욕한다는 논지로 공개적인 이의를 제기해 '자유부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문학평론가 백철은 '신문소설의 대중성과 예술성 문제’를 거론,이후 문단에서는 신문소설의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여성 단체와 정계에서도 정비석 작가에 대한 고발과 투서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서울신문>의 판매 부수는 세 배로 뛰어올랐다. 정음사에서 펴낸 단행본《자유부인》은 발매 사흘 만에 초판이 매진되고 총 7만부가 팔려, 국내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기록 되었고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작품 및 연혁

중앙신문 문화부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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